과거 경기도 김포군에 속했던 양천구는 서울의 확장과정에서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 이후 두 번의 분구 과정을 통해 현재의 양천구에 이르렀다. 서울의 확장과정과 양천구의 변화를 살펴본다.
서울은 근대 이후 급속한 인구 증가와 함께 공간적 확장을 경험했다. 조선 시대 서울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한성부 도성 5부와 도성의 외곽지역인 성저 십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화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울시역은 꾸준히 확장되었고 1949년 268㎢, 1963년 613㎢, 1973년 627㎢로 시역이 확장됐으며, 이후 면적 재조정 등으로 현재의 605㎢에 이르게 됐다.
1963년 서울시역의 대규모 확장 전까지 양천구 일대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1963년 1월 1일 김포군 전역과 부천군 오정면과 소사읍의 각 일부, 시흥군 신동면 전역과 시흥군 동면 중 시흥, 독산, 가리봉, 신림, 봉천의 각 동이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이때부터 양천구 영역은 서울시 영등포구에 속했다.
1977년 9월 1일에는 안양천으로부터 서쪽지역 16개 동이 분할되어 강서구로 독립하였고, 이때부터 강서구 관할이 되었다.
강서구가 다시 1988년 분구되어 현재의 양천구가 되었다.
영등포구에서 강서구가 독립하고, 은평구와 강동구의 설치(1979년), 구로구와 동작구의 설치(1980년)되면서 구의 순위를 결정한 문서이다.
출처 : 서울기록원
1988년 1월 1일자로 양천구를 비롯한 노원, 중랑, 서초, 송파구가 신설되었다. 현 양천구청 청사가 준공(1992년 11월)되기 전, 양천구는 분구 후 임시청사를 사용했다. 임시청사는 현재 양천구민체육센터 부지에 있었다. 아래 공문서들은 임시청사의 부지 결정과 건립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서울기록원
임시청사를 사용하는 한편, 확보된 구청사 부지에 1990년 6월 청사 신축에 들어갔다. 착공 후 약 2년 5개월 후인 1992년 11월 현재의 양천구청 청사가 준공되었다. 건물 내부는 일부 변형, 리모델링 되었으나 외관은 준공 당시와 유사하다.
양천구는 법정동 3개, 행정동 18개로 이뤄져 있다. 목동, 신월동, 신정동의 변화상을 시대별 행정구역과 함께 살펴본다.
| 시대 | 목동 | 신월동 | 신정동 |
|---|---|---|---|
| 삼국시대 |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 | ||
| 통일신라 (757) | 율진군(栗津郡) 공암현(孔巖縣) | ||
| 고려초 (1018) | 양광도(楊廣道) 수주(樹州) 공암현(孔巖縣) | ||
| 고려말 (1391) | 경기좌도 양천현(陽川縣) | ||
| 조선 태종 (1471) | 경기도 김양현(金陽縣) | ||
| 조선 숙종 (1698) | 경기도 양천현(陽川縣) | ||
| 1896.8.14 | 양천군 월촌리, 내목동, 외목동 | 양천군 장군소면(將軍小面) 신월리, 고음월리, 당곡리 | 양천군 장군소면(將軍小面) 은행정리, 신기리 |
| 1914.3.1 |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 | 김포군 양동면 신당리 | 김포군 양동면 신정리 |
| 1963.6.1 | 영등포구 양동출장소 목동리 | 영등포구 양동출장소 신월리 | 영등포구 양동출장소 신정리 |
| 1968.1.1 | 영등포구 목동 | 영등포구 신월동 | 영등포구 신정동 |
| 1977.9.1 | 강서구 목동 | 강서구 신월동 | 강서구 신정동 |
| 1988.1.1 | 양천구 목동 | 양천구 신월동 | 양천구 신정동 |
| 현재 행정동 | 목1동~목5동 | 신월1동~신월7동 | 신정1~4동, 신정6~7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