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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농경지였던 양천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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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변천사CHAPTER 01 · CHANGES OF YANGCHEON-GU

김포군에서 영등포구로, 다시 양천구로

과거 경기도 김포군에 속했던 양천구는 서울의 확장과정에서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 이후 두 번의 분구 과정을 통해 현재의 양천구에 이르렀다. 서울의 확장과정과 양천구의 변화를 살펴본다.

옛 양천구의 농경지 모습
▲ 양천구 일대의 옛 모습

서울의 확장과정

서울은 근대 이후 급속한 인구 증가와 함께 공간적 확장을 경험했다. 조선 시대 서울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한성부 도성 5부와 도성의 외곽지역인 성저 십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화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울시역은 꾸준히 확장되었고 1949년 268㎢, 1963년 613㎢, 1973년 627㎢로 시역이 확장됐으며, 이후 면적 재조정 등으로 현재의 605㎢에 이르게 됐다.

1394-1913년 한성부 도성5부와 성저십리
1394–1913년 · 한성부 도성5부 · 성저십리 · 1911 확장
1914-1963년 서울 확장
1914–1963년 · 1914년·1936년·1949년·1963년 확장
1973년 12개 구
1973년 서울확장 후 · 12개 구(區)
1995년 이후 25개 자치구
1995년 이후 · 서울의 25개 구(區)

옛 지도로 보는 양천구

1963년 서울시역의 대규모 확장 전까지 양천구 일대는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1963년 1월 1일 김포군 전역과 부천군 오정면과 소사읍의 각 일부, 시흥군 신동면 전역과 시흥군 동면 중 시흥, 독산, 가리봉, 신림, 봉천의 각 동이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이때부터 양천구 영역은 서울시 영등포구에 속했다.

1977년 9월 1일에는 안양천으로부터 서쪽지역 16개 동이 분할되어 강서구로 독립하였고, 이때부터 강서구 관할이 되었다. 강서구가 다시 1988년 분구되어 현재의 양천구가 되었다.

옛 지도 1
경기도 김포군 일부 · 1920년대 (국토지리정보원)
옛 지도 2
서울시 영등포구 일부 · 1966년 최신서울특별시전도
옛 지도 3
서울시 강서구 일부 · 1980년
옛 지도 4
서울시 양천구 일부 · 1992년

강서구에서 양천구로

분구 전 지도

양천구가 강서구에서 분구되기 전의 모습이다.

분구 전 지도 — 1984 경화사 서울특별시 구별행정도
1984 경화사 서울특별시 구별행정도

분구 후 지도

양천구로 분구 후 모습. 행정동 경계는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분구 후 지도 — 1990 은광사 서울특별시 구별지도
1990 은광사 서울특별시 구별지도

행정구역조정에 따른 구의 순위 조정 문서

영등포구에서 강서구가 독립하고, 은평구와 강동구의 설치(1979년), 구로구와 동작구의 설치(1980년)되면서 구의 순위를 결정한 문서이다.

행정구역조정 공문 — 임시청사 건립 협의 문서
양천구청 임시청사 건립에 따른 협의 문서 (1988.2.23)
행정구역조정 공문 — 구의 순위 결정 고시안
서울특별시 구의 순위 결정 고시(안) — 첨부 1부

출처 : 서울기록원

분구관련 추진문서

강서구 일부가 양천구로 분구함에 따라 작성된 업무계획, 업무지침, 추진내역 등 분구관련 행정문서이다.

분구 추진문서 — 업무처리 지침 표제
분구에 따른 업무처리 지침 — 표제
분구 추진문서 — 인사·관인·대장 관리 본문
인사관리·관인관리·각종 대장 관리 등 본문
분구 추진문서 — 1988.1.1 분구 추진계획
1988.1.1 분구 추진계획 — 업무 추진반 편성·세부 추진계획

출처 : 서울기록원

임시청사 개청

1988년 1월 1일자로 양천구를 비롯한 노원, 중랑, 서초, 송파구가 신설되었다. 현 양천구청 청사가 준공(1992년 11월)되기 전, 양천구는 분구 후 임시청사를 사용했다. 임시청사는 현재 양천구민체육센터 부지에 있었다. 아래 공문서들은 임시청사의 부지 결정과 건립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임시청사 1
임시청사 전경 (1)
임시청사 2
임시청사 전경 (2)
임시청사 3
임시청사 전경 (3)
임시청사 위치도
임시청사 위치도
임시청사 관련 문서
임시청사 관련 결정 문서
임시청사 부지 결정 문서
임시청사 부지 결정 관련 행정문서
임시청사 건립 추진 문서
임시청사 건립 추진 문서

출처 : 서울기록원

양천구청 청사 건설

임시청사를 사용하는 한편, 확보된 구청사 부지에 1990년 6월 청사 신축에 들어갔다. 착공 후 약 2년 5개월 후인 1992년 11월 현재의 양천구청 청사가 준공되었다. 건물 내부는 일부 변형, 리모델링 되었으나 외관은 준공 당시와 유사하다.

기공식
양천구청사 신축기공식 (1990년 6월)
준공 양천구청사
준공된 양천구청사 (1992년 11월)
청사 내부
준공 당시 청사 내부
청사 행사
당시 청사 내 행사 모습
청사 직원 단체사진
양천구청사 준공식 (1992년 11월) — 사진 뒤편으로 13·14단지 모습이 보인다.

양천구 동의 변화

양천구는 법정동 3개, 행정동 18개로 이뤄져 있다. 목동, 신월동, 신정동의 변화상을 시대별 행정구역과 함께 살펴본다.

시대별 행정구역 변천

시대 목동 신월동 신정동
삼국시대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
통일신라 (757)율진군(栗津郡) 공암현(孔巖縣)
고려초 (1018)양광도(楊廣道) 수주(樹州) 공암현(孔巖縣)
고려말 (1391)경기좌도 양천현(陽川縣)
조선 태종 (1471)경기도 김양현(金陽縣)
조선 숙종 (1698)경기도 양천현(陽川縣)
1896.8.14 양천군 월촌리, 내목동, 외목동 양천군 장군소면(將軍小面) 신월리, 고음월리, 당곡리 양천군 장군소면(將軍小面) 은행정리, 신기리
1914.3.1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 김포군 양동면 신당리 김포군 양동면 신정리
1963.6.1 영등포구 양동출장소 목동리 영등포구 양동출장소 신월리 영등포구 양동출장소 신정리
1968.1.1 영등포구 목동 영등포구 신월동 영등포구 신정동
1977.9.1 강서구 목동 강서구 신월동 강서구 신정동
1988.1.1 양천구 목동 양천구 신월동 양천구 신정동
현재 행정동 목1동~목5동 신월1동~신월7동 신정1~4동, 신정6~7동
양천구 행정동 경계 지도
▲ 현재 양천구의 18개 행정동 경계 — 목1~5동 · 신월1~7동 · 신정1~4, 6~7동

법정동 이름의 유래

신월동
조선시대 이 고을 원님이 양천향교를 지나 현 화곡아파트 부근 돌다리 앞에 이르러 전망을 보니 마을이 신선하고 반달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새 ‘新’자와 달 ‘月’자를 따서 신월리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되었다.
신정동
자연마을이었던 신기(新機, 신트리)의 新자와 은행정의 정자를 따서 지어졌다. 신기는 600년 전의 지도에도 표기될 만큼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신기란 새로운 터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터리 → 신틀이 → 신트리로 전해진 것이라 추정된다.
목동
안양천 제방공사로 농경지가 조성되기 이전에는 목장으로 이용되던 곳으로, 내목동 혹은 나말, 안말, 안마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졌다. 처음에는 목동(牧洞)이라 하였고, 점차 표기가 달라져 목동(木洞)으로 되었으리라 추정된다.